45. 무쇠체력 할아버지
2011년 7월 17일
D형과 같이 있던 시간도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제 작별의 시간이다.
나는 남쪽으로, D형은 북쪽으로 간다.
뭔가 더 있고 싶은 도시였지만, 하늘이 검게 밀려오는 것을 보니 더 있을 수 없을 듯하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난 도나우뵈르트로 향했다.
지도를 보니 오늘 달릴 거리는 80km.
그런데 도로 이정표에 나온 숫자는 50km가량이었다.
그랬다. 자전거 도로를 내 주는 대신 30km를 돌아가야 되고
그마저도 편한 길이 아닌 산 넘고 물 건너 가는 길을 주는 것이다.
날이 맑다면
돌아간다고 해도
매연 안 마시고
경치를 보면서
안전하게 가는 것이 좋지만 비
가 온다면 무조건 편하고 빨리 가는 것이 좋다.
오늘만큼은 민폐 좀 끼쳐야겠다.
자동차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다.
[원래 도로에서 민폐끼치고 다녔잖아!]
얼마 가지 않아 역시나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비를 맞으면서 한 시간 이상 달리면 이성이 흐려진다.
페달을 내가 젓는지, 남이 저어주는 건지 그 주체를 알 수 없다.
머릿속으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저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앞을 보지 않고 고개를 아래로 푹 박고 가게 된다.
이럴 때 앞에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피할 수 있는 것도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에는 일부러라도
지금 내 밑에는 다리가 달려있고, 다리는 지금 페달을 젓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주기적으로 다리를 털어주면 정신줄을 잡고 버틸 수는 있다.
끝까지 정신줄을 놓지 않은 덕분에 간신히 도나우뵈르트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호스텔을 찾아 들어갔는데, 이상하다.
문은 열려있는데, 지키고 있는 사람은 없다.
이상하다. 그런데 앞에 팻말이 놓여 있다.
[리셉션은 8시부터 1시, 5시부터 7시까지 운영합니다.]
세상에 리셉션이 이렇게 배짱영업하는 곳이 있나?
개인이 운영하는 호스텔이 아닌
이런 공립 호스텔은
지정된 시간이 아니면 리셉션이 서지 않는다.
그것도 모르고 엄한 시간에 들어오면
나처럼 들어오고도 체크인도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지금 나는 실컷 비를 맞고 들어왔다.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건 당연지사.
보통 추운 정도가 아니고 손가락이 내 맘대로 굽혀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너무 떨어서 팔이 내 맘대로 조정이 안 된다.
가방들을 정리하는데
손잡이 방향으로 손이 안 뻗어 나가 계속 허공에서 헛손질을 했다.
지금 이 상태에서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샤워.
그런데 리셉션은 닫혀있고 불은 다 꺼져있었다.
따뜻한 물은 나올까?
샤워실을 찾아보자.
다행히도 방과 샤워실은 따로 분리되어 있다.
방 키가 없어도 샤워를 할 수 있다. - 들키지만 않는다면!
물을 틀어 보았다. 펄펄 끓는 물이 나온다!
살았다! 누가 들킬세라 옷을 꺼낸다.
그런데, 옷이 거의 젖어서 쓸 만한 옷이 없다.
간신히 당장 입을 수 있는 옷 한 세트를 만들었다.
수건은 약간은 젖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것 따질 새야? 몸 좀 녹이고 보자!
이렇게 체크인도 안하고 도둑 샤워를 했다.
아... 이것이 천국이다.
이 여행,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행복은 특별한 것이 없다고.
지금 내가 절실히 필요한 것을 가졌으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샤워가 끝났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몸을 추스르고 오늘을 기록하면서
리셉션이 언제 여는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고 있던 중 자전거에 트레일러까지 달고 다니는 분이 유유히 호스텔로 들어오고 계신다.
그런데 그 사람은
머리에 붙어있는 백발도 얼마 남지 않은 할아버지였다!
“뭐 그렇게 많이 끌고 다니세요?”
“지금 내 여행에는 어쩔 수 없단다.”
“이게 다 뭔데요?”
“자전거 예비부품들이지.”
“여기는 샵도 많은데 예비부품이 왜 필요해요?”
“아, 난 유럽 도는 게 아니고 아메리카 대륙 횡단할 거거든.”
“예??”
“인터넷을 찾아보니깐
스페인에서 선박소포 싸게 해 주는 회사가 있더라고.
일단 난 덴마크에서 왔고
여기를 거쳐서 스페인 항구까지 간 다음에
이것들 모두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부칠거야.”
“잠깐, 나이가...?”
“이제 66이지.”
66!!
20대 친구들도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자전거 여행을
지금 66세 할아버지께서 하신다는 건가요?
“그래서 차 타고 아르헨티나 땅 끝 우수아이아Ushuaia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알래스카까지 타고 갈 계획이야.
거기서 자전거에 탈 나면 일 나지.
그러니깐 이렇게 트레일러에 한 가득 채워 가는 거고.”
나도 시간이 충분하다면 남미도 가 보고 싶은데...
그러려면 일단 1년이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게다가 지금 유럽 도는 것도 힘든데 아메리카 대륙 횡단을 어떻게 하지?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너도 꽤 한가득 들고 다니는데?”
“뭐, 텐트랑 침낭하고 옷가지들이에요.”
“텐트? 침낭? 너 노숙하니?”
“그렇죠. 돈 좀 아끼려고요.”
“야... 난 그런 짓은 못하겠다.
이제 난 돈은 충분하고 나이는 이래서 밖에서는 못 자겠다.
젊었을 때 했다면 좀 어떻게 해 볼까 했는데.”
“저...저기... 할아버지 스케일이 훨 큰 것 같아요.”
내일 이 시간에 계속..
66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자전거 세계일주를 하는 할아버지
이 할아버지와 도나우베르트 뿐만 아니라 아우크스부르크 아욱국까지 동행하였다.
텍스트로는 남겨놓지 않았지만, 같이 다닌 기록들
공동주택 푸거라이Fugerei
아우쿠스부르크에는 푸거라이라는 공공임대주택조합같은 것이 있다.
몇백년 전부터 소득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연 1유로 이하의 임대료만 내면 살 수 있게 만든 주택조합이다.
(기억으로는 연 0.74유로다)
주택조합원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반상회에 참석해야 한다.
지금도 가동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ㅜㅜ
모차르트의 할아버지도 이 곳에서 생활하셨다. 인증패
모차르트 할아버지 집만은 세 안주고 보존하고 있다.
2000년된 아욱국 궁전도 가본다.
2000년 전에 이런 바로크? 아님 다른 세대?
암튼 이런 그림이 있었는 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니 믿겠다.
아마도 궁전 건물터만 2000년 되었것지...
암튼 이런 그림이 있었는 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니 믿겠다.
아마도 궁전 건물터만 2000년 되었것지...
금으로 잘 발랐다.
나 이런 곳에서 결혼하든 파티하든 놀든 하게 스팀 가즈아~~!
어딘가 이름 모를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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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41 체코 - 프라하에서의 평범한 나날 2 | 뭉치면 시끄러운 한국 사람들 | 해부에 능한 전주자매들 | 희극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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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13 그녀를 만나기 12시간 전
CHAP1_12 욕창 터지고, 기차에 실려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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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